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리자베스 1세 (문단 편집) === 국방 === 엘리자베스는 당시 초강대국 스페인의 군주 펠리페와 연을 맺은 메리1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만큼 스페인과의 외교는 매우 안좋을 수 밖에 없었고 영국이 대외로 나오려면 스페인과의 전쟁은 필수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영국은 당시 약소국이였기에 스페인의 지배를 받는 네덜란드의 독립활동을 비밀리에 지원하면서 해군의 신무기이자 스페인 해군이 운용하는 함포보다 사정거리가 더 긴 캘버린포를 설계 및 양산하였고 잉글랜드는 어차피 상륙을 허가한다면 그냥 게임 끝이라고 생각, 도버 해협을 지킬수 있던 해군이 가장 중요하다며 육군보다 군함을 적극적으로 건조하고 전쟁을 대비하였다. 그러나 약소국이던 잉글랜드가 별다른 대외 전쟁을 벌일수 없었고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막대한 금은보화가 탐나던 상황에서 이 스페인으로 가는 금은보화라도 얻기 위해 사략사업[* 사략선은 자국의 교역선을 공격하지 않는 대신에 타국의 함선을 언제든지 공격해 나포 및 약탈해도 된다는 허가 및 보호해주겠다는 조약을 맺고 국가가 공인한 해적이었다.] 즉, 해적업을 장려하며 스페인이 마야나 아즈텍 등 중남미에서 약탈한 수많은 황금과 재화를 적재한 스페인 함선을 공격하며 이득을 보았다. 스페인은 계속 당하니까 영국 사략함대의 대표 인물이자 해적인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참수하라고 요구했으나 잉글랜드는 이를 거절, 당연히 스페인이 아득바득 이를 갈던 상황에서 엘리자베스 1세가 가톨릭교 신도이자 친척인 메리 스튜어트를 참수하는 일이 발생, 이에 스페인은 가톨릭 교도 보호를 전쟁 명분으로 삼는다. 엘리자베스 1세는 전쟁이 터지자 가장 전투경험이 많은 드레이크를 해군 총 지휘관으로 임명하였고 잉글랜드 해군 - 네덜란드 독립파 해군이 연합한 해군은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맞서 칼레해전을 통해 대승을 거둔다. 그렇게 참패를 겪은 스페인은 불구가 되어 재건하는 1년동안은 영국은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다시 함대를 재건중이라는 첩보를 듣고 승리한지 단 1년만에 드레이크와 노리스 장군을 다시 스페인으로 보내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했으나 일격은 실패하고 되려 이 패전을 통해 스페인 해군이 다시 부활한다. 사실상 무승부에 가까운 결과를 낳았지만 스페인을 상대하기 위해 차근차근히 육성한 해군들은 추후 식민지를 늘리는데 유용하게 쓰였고 엘리자베스 1세의 재임기간에는 잉글랜드가 세계를 주름잡는 원동력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